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처분이 끝났다고 사건이 종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학생 측이 치료비와 위자료를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별도로 제기하면, 학생 본인과 부모가 함께 피고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소장을 받은 날부터 30일 안에 답변서를 내지 않으면 상대방 주장이 그대로 인정될 수 있고, 학폭위와 형사 절차에서 한 진술이 곧바로 증거가 됩니다. 책임능력과 감독의무, 청구금액의 타당성, 손해와 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초기에 정리하는 일이 결과를 크게 바꿉니다.
학폭위가 끝났는데 왜 다시 소장이 오는가
상담실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학폭위 처분도 받았고 봉사도 다 했는데 또 소송이라니요." 학교에서 내려지는 조치와 법원이 판단하는 손해배상은 서로 다른 절차입니다.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른 조치는 학생에 대한 교육적, 행정적 처분이고 치료비와 위자료를 실제로 물어내는 문제는 민법상 불법행위 책임의 영역입니다. 한쪽이 끝났다고 다른 쪽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학폭위 결과가 나온 뒤에 소장이 도착하는 경우가 더 흔합니다. 피해학생 측 입장에서는 심의 결과가 청구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교폭력 민사소송은 사건 발생 시점보다 몇 달, 길게는 1년 이상 지난 뒤에 시작되는 일이 많습니다.
피고가 학생 혼자가 아닌 이유
소장을 열어보면 자녀 이름 옆에 부모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습니다. 당황스러우시겠지만 통상적인 청구 방식입니다.
가해학생 본인: 민법 제750조에 따른 불법행위자로서의 책임
부모(친권자): 자녀에게 책임능력이 없으면 민법 제755조 감독의무자 책임, 자녀에게 책임능력이 있더라도
감독의무 위반과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별도의 책임
학교 또는 지방자치단체: 교사의 보호, 감독 의무 위반이 문제 되는 경우 추가로 피고가 되기도 합니다
법원은 대체로 만 12세에서 15세 사이를 기준으로 책임능력 유무를 개별적으로 판단합니다. 초등학생이라면 본인 책임이 부정되고 부모 책임만 남는 방향으로, 고등학생이라면 본인과 부모가 함께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쪽이냐에 따라 방어 논리가 완전히 달라지므로 이 지점을 처음부터 정확히 짚고 가야 합니다.
소장을 받은 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첫째, 30일이라는 기한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소장 부본을 송달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답변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이 기한을 넘기면 상대방 주장을 다투지 않은 것으로 보아 변론 없이 판결이 선고될 수 있습니다. 억울한 부분이 있어도 말할 기회 자체가 사라지는 셈입니다. 청구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면 우선 부인하는 취지의 답변서를 기한 내에 내고, 구체적인 주장은 이후 준비서면으로 보완하는 방법이 안전합니다.
둘째, 기록을 모으되 새로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사건 당시 자료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집니다. 다만 이미 있는 것을 정리하는 일과 유리해 보이는 자료를 새로 만들어내는 일은 전혀 다릅니다. 후자는 발각되는 순간 사건 전체의 신뢰를 잃습니다.
·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회의록과 처분 통지서
· 사안조사 과정에서 제출한 확인서, 진술서
· 사건 전후의 메신저 대화, 통화 내역, 사진
· 목격 학생의 진술이나 담임교사와 주고받은 기록
· 자녀의 상담 기록이나 진료 기록이 있다면 함께
셋째, 상대방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과하고 싶은 마음, 오해를 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소송이 시작된 뒤의 직접 연락은 합의로 이어지기보다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연락 자체가 압박으로 받아들여져 별건 문제로 번지기도 합니다. 의사 전달은 대리인을 통하시는 편이 결과적으로 자녀에게 유리합니다.
실제로 다투게 되는 쟁점들
행위의 범위
소장에는 여러 행위가 한꺼번에 나열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중 일부는 자녀가 한 일이 맞고, 일부는 다른 학생이 한 일이며, 일부는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부 인정하거나 전부 부인하는 대응은 둘 다 좋지 않습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다툴 것은 근거를 들어 다투는 태도가 재판부의 신뢰를 얻습니다.
손해와 행위 사이의 인과관계
학교폭력 민사소송에서 청구금액이 크게 잡히는 항목은 대개 치료비와 향후치료비, 그리고 위자료입니다. 다음 부분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 진단서상 상병이 해당 사건으로 발생한 것인지, 이전부터 있던 증상인지
· 치료 기간과 횟수가 상해 정도에 비추어 통상적인 범위인지
· 정신과 치료비의 경우 다른 원인이 개입하지 않았는지
· 향후치료비 추정의 근거가 되는 자료가 실제로 제출되었는지
여러 명이 관련된 사건에서의 책임 분담
가해학생이 여러 명인 사건에서는 공동불법행위가 문제 됩니다. 원칙적으로 각자가 손해 전액에 대해 책임을 지기 때문에 자녀의 관여 정도가 작았더라도 청구는 전액으로 들어옵니다. 가담 정도와 시기, 주도 여부를 구체적으로 밝혀 책임 비율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다른 학생 측과 이해관계가 갈릴 수 있으므로 공동 대응 여부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쌍방 다툼이었던 경우
일방적인 가해가 아니라 서로 충돌한 사안인데도 한쪽만 신고되어 절차가 진행된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는 피해자 측 과실을 주장해 배상액을 조정하는 방향을 검토합니다. 다만 감정적으로 상대를 비난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간 순서와 객관적 자료로 보여주는 방식이어야 효과가 있습니다.
시효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은 날부터 10년이 지나면 청구권이 소멸합니다. 오래된 사안이 뒤늦게 문제 되는 경우에는 이 부분을 먼저 살펴봅니다.
합의와 조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변호사로서 무조건 끝까지 다투자고 권하지는 않습니다. 학교폭력 민사소송은 판결로 마무리되어도 서로에게 남는 것이 많지 않은 사건입니다. 특히 자녀가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고 진학과 생활이 남아 있다면 더 그렇습니다.
· 합의가 성립하면 형사 절차나 소년보호사건에서도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됩니다
· 법원의 조정 절차를 활용하면 판결보다 낮은 금액에서 정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 합의서에는 부제소 조항과 청구 범위를 명확히 적어 재차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 학교안전공제회를 통해 보상이 이루어진 부분이 있다면 중복 배상 여부를 확인합니다
다만 사실관계 자체가 다르거나 청구금액이 지나치게 과다한 사안에서는 성급한 합의가 오히려 자녀에게 전부 인정했다는 기록을 남깁니다. 어느 쪽이 나은지는 사안마다 다릅니다.
다른 절차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면
학교폭력 사안은 하나의 사건이 여러 절차로 갈라집니다. 학폭위 조치에 불복하는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 형사 고소나 소년보호사건, 그리고 민사 손해배상 청구가 동시에 진행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각 절차에서 한 진술이 서로 어긋날 때입니다. 한 곳에서 사실을 인정하고 다른 곳에서 부인하면 그 불일치 자체가 가장 불리한 증거가 됩니다. 학교폭력 민사소송을 준비할 때 다른 절차의 기록을 먼저 전부 확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말
소장을 받아 든 부모님들은 대개 두 가지 감정 사이에 있습니다. 자녀가 잘못한 부분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청구서에 적힌 금액과 표현에 대한 억울함입니다. 두 감정 모두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소송은 감정이 아니라 자료로 판단되는 절차입니다.
사건을 맡으면 저는 먼저 자녀에게 직접 묻습니다.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를 부모님을 통해서가 아니라 본인에게 듣습니다. 그다음에야 다툴 부분과 인정할 부분이 정리됩니다. 어떤 사건은 배상액을 크게 줄이는 것이 목표가 되고, 어떤 사건은 빠르고 조용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가 됩니다. 방향을 정하는 일이 서면을 쓰는 일보다 먼저입니다.
혼자 판단하기 어려우시다면 답변서 기한이 지나기 전에 상담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늦게 오실수록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줄어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