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얼굴로 만들어진 영상이 교실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안은 피해자가 견디는 것으로 정리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삭제 지원과 확산 차단, 학교 절차에서의 보호조치, 형사 고소와 피해자 국선변호사 선정, 손해배상 청구까지 제도가 마련되어 있고 그 대부분은 신청해야 작동합니다. 무엇보다 급한 것은 증거 확보와 삭제 요청을 동시에 진행하는 일입니다. 순서를 바꾸면 나중에 다툴 근거가 사라집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 눈앞에서 없애고 싶은 마음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대화방을 나가거나 링크를 지워버리면, 누가 만들었고 누가 퍼뜨렸는지를 확인할 방법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래서 순서를 이렇게 잡습니다.
대화방과 게시물의 화면을 캡처합니다. 참여자 목록, 날짜와 시간, 발신자 이름이 함께 나오도록 찍습니다
링크 주소와 계정 아이디를 따로 적어둡니다
이 자료를 다른 저장 공간에 한 벌 더 보관합니다
그다음에 삭제와 차단 요청을 시작합니다
캡처를 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부탁해도 됩니다. 다만 그 친구가 다시 다른 곳에 전달하는 일이 없도록 명확히 해두어야 합니다.
삭제와 확산 차단은 혼자 하지 않아도 됩니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삭제 지원을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상담 번호는 02-735-8994입니다. 플랫폼에 직접 삭제를 요청했는데 응하지 않는 경우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접속차단 심의를 신청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딥페이크 피해에서 가장 두려운 부분은 어디까지 퍼졌는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지원센터는 유포 여부를 확인하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재유포를 잡아내는 일까지 지원합니다. 혼자 검색하며 확인하는 일은 정신적으로 견디기 어렵고 정확하지도 않습니다.
학교에서 요구할 수 있는 것
성 관련 사안은 학교장 자체해결 대상이 아니어서 반드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열립니다. 학교는 사안을 알게 된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할 의무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피해학생이 요청할 수 있는 보호조치가 있습니다.
가해학생과의 접촉, 협박, 보복 행위 금지
학급 교체나 자리 배치 조정
심리상담과 조언, 일시보호
치료를 위한 요양과 그 기간의 출석 인정
사안조사 과정에서 가해학생과 마주치지 않도록 하는 분리 조치
문제는 이런 조치들이 자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요청해야 하고, 요청한 기록이 남아야 합니다. 구두로만 말씀하시면 나중에 확인할 방법이 없어 서면으로 남기시기를 권합니다.
심의위원회 결과가 지나치게 가볍다고 판단되면 피해학생 측도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처분이 있음을 안 날부터 90일, 있었던 날부터 180일 이내입니다.
형사 절차에서 받을 수 있는 조력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피해자 국선변호사를 선정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특히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인 경우 국선변호사가 선정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비용 부담 없이 수사와 재판 전 과정에서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하는 일은 이렇습니다.
고소장 작성과 제출
조사 과정 동석과 부당한 질문에 대한 이의 제기
수사 진행 상황과 처분 결과의 통지 요청
가해자 측 합의 요구에 대한 대응 창구 역할
신변보호 조치 신청
또한 조사 과정에서 신뢰관계 있는 사람의 동석을 요청할 수 있고, 반복 진술로 인한 부담을 줄이기 위한 영상녹화 제도, 의사소통을 돕는 진술조력인 제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딥페이크 피해 사건에서 아이가 같은 이야기를 몇 번씩 되풀이하며 무너지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이런 제도들은 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존재합니다.
금전적인 회복도 별개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심의위원회 조치나 형사 처벌은 가해자에 대한 것이지 피해 회복 자체는 아닙니다. 치료비와 위자료를 실제로 받으려면 손해배상 청구가 필요합니다.
가해학생 본인과 그 부모를 상대로 청구합니다
여러 명이 관련되었다면 각자의 가담 정도에 따라 함께 청구합니다
만든 사람뿐 아니라 퍼뜨린 사람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학교가 사안을 알고도 방치했다면 학교나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청구를 검토합니다
정신적 손해는 영수증이 없어 액수를 다투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담과 치료를 받은 기록, 등교나 학업에 미친 영향, 유포 범위와 지속 기간에 관한 자료를 처음부터 모아두는 일이 중요합니다.
2차 가해에 대한 대응
이 사안에서 아이를 가장 무너뜨리는 것은 원본이 아니라 그 이후입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는 말, 사진을 올린 게 잘못이라는 말, 조용히 넘어가자는 권유가 이어집니다.
학교 안에서의 소문 확산이나 조롱은 별도의 학교폭력 사안으로 신고할 수 있습니다
가해학생 측의 직접 연락은 접촉 금지 조치 위반이 됩니다
합의 압박이 반복되면 대리인을 통해서만 연락하도록 정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진을 올린 것이 잘못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아무 사진도 남기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고, 그것을 가져다 합성한 쪽에 책임이 있습니다. 이 말을 아이에게 분명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부모님께 드리는 말씀
먼저 아이를 다그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왜 그런 사진을 올렸느냐, 왜 이제야 말했느냐는 질문은 대개 걱정에서 나오지만 아이에게는 비난으로 들립니다. 그 순간 아이는 남은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됩니다.
두 번째로, 상대 학생이나 그 부모에게 직접 찾아가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감정이 부딪히면서 사안의 초점이 흐려지고, 때로는 오히려 문제가 생깁니다.
세 번째로, 아이가 힘들어하는 정도가 심하다면 상담이나 진료를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치료 기록은 나중에 손해배상 단계에서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하지만, 그보다 아이가 지금 버틸 수 있게 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마무리하며
딥페이크 피해를 겪은 학생들이 상담실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학교를 다닐 수 있을까요"입니다. 솔직히 예전과 똑같이 돌아가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 일이 그 아이의 잘못으로 남지 않게 정리하는 것, 가해자가 책임을 정확히 지게 하는 것, 흩어진 영상을 최대한 걷어내는 것은 가능합니다.
혼자 감당하고 계셨다면 지금부터는 나눠 지셔도 됩니다. 우선 자료를 보관하시고 삭제 지원을 신청하십시오. 그다음 절차는 순서대로 밟아나가면 됩니다.